잡다한것들

[스크랩] 국밥에 빈대떡에... 소시민들로 북적거릴 그집

정우산기 2008. 2. 21. 16:15

 

 

유진식당의 평양냉면(3,500원)

 

 

어떤 이는 그 집의 냉면을 두고서 ‘이만한 맛에 이 가격은 기적에 가깝다’라고 했다. 냉면이  어떻길래 그런 찬사를 보내는 걸까? 어제(21일) 직접 찾아가 봤다. 가격부터 놀랍다. 평양냉면 한 그릇에 3,500원.

 

매콤냉면이나 고깃집 냉면에 비하면 그다지 뭐 놀랄 값도 아니다. 하지만 시중의 냉면명가에서 7천원에서 9천원까지 받는 점을 감안하면 기적에 가깝다라는 말이 나올 법도 하다. 그러나 싼 가격만 보고 찬사를 보내진 않았을 터.

 

기대치도 않는 곳에서 대박을 건진 것처럼 이 면발은 서울 유명 그 어느 면발에도 절대 처지지 않는다. 혓바닥에 닿는 면발의 까실한 느낌... 깊은 곳에서 은근히 풍기는 메밀향... (네이버 블로그) 

 

평양냉면(3500원)으로 처음에는 너무 저렴한 탓에 대충 흉내만 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육수를 한 모금 마셔보고 그릇된 생각이었음을 단번에 느꼈습니다 특유의 밍밍한 맛에 면수와 육수를 적당히 섞은 듯 싶네요 물론 6000원 이상 값을 하는 유명 평양냉면집보다는 떨어지지만 가격을  감안해보면 진짜 평양냉면 맞습니다.(네이버 블로그)

   

맛객이 먹어본바, 육수에서는 산미가 느껴지고 들이킬수록 간간한맛이 미각에 부담을 주어 음미를 방해했다. 면발은 평양냉면치고는 질긴 편이다. 하지만 양질의 메밀 함량이 50프로 이상 들어간 탓에 풍미는 느낄만하다. 매콤냉면을 즐기던 사람들이 냉면명가의 평양냉면에 입문하기 전 중간단계로 거쳐 가면 딱이다 싶은 맛이다. 그렇지만 맛객의 미각에는 불만족스럽다. 하지만 부족한 맛을 다잡아 달라고 주문할 수는 없다.

 

 

이만한 맛에 이 가격은 기적

 

 

탑골공원에서 인사동쪽 담벼락을 따라 후문으로 가다보면 그들만의 특구가 나온다. 그중에 한 집이 유진식당이다

 

 

탑골공원 후문 일대는 노인과 힘없는 소시민들의 특구이다. 그대가 만약 해가 떨어질 즈음 이곳에 들어선다면 그대는 서울 아닌 서울을 경험하게 된다. 바로 이웃한 인사동이나 종로의 화려함과는 극적으로 대비되는 이곳. 마치 고물상 입구처럼 보이는 거리에는 밥집인지 술집인지 경계가 모호한 식당들이 즐비하다.

 

식당의 특징이라면 시골 촌동네보다 싼 음식가격이다. 아직도 이런 데가 있었어? 싶을 정도로 음식 값은 시대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값이 싸다고 해서 선뜻 문을 열고 들어서게 되지는 않는다. 두 세평 남짓한 누추한 식당, 또 거기에 어울릴법한 차림새의 사람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과연 맛있어서 그렇게 부대낄 정도로 좁은 공간에 모여 있는 걸까? 그 만한 가격에 그만한 맛으로도 충분히 위안을 얻을 수 있는 공간이 이 도시에 많다면 굳이 그런 불편한 공간에 머물지는 않을 것이다.

 

때문에 이 골목에서 하루 종일 어슬렁거리지 않는 사람이 발을 들여놓는 자체가 누를 끼치는 일일 수도 있다. 그런 정서도 모르는 체 미식에 젖은 미각의 기준으로 맛타령을 한다면 죄송스런 일이다.

 

 

그들만의 안식처에서 맛타령은 금물

 

 

 소주와 삶은 돼지고기(大) 5,000원

 

 

그대가 외롭다고 느낄 때, 고독해서 소주라도 한잔 생각난다면 홀로 그 집으로 발길을 해보시라. 들어서면 그대보다 먼저 국밥에 혹은 빈대떡에 소주를 들이키는 어르신들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만약 운 좋게 빈자라라도 있다면 제육 한 접시에 소주한 병 주문해보는 건 어떨까?

 

그리고 또 누군가가 들어와 빈자리가 없어 머뭇거린다면 기꺼이 합석을 권해 보시라. 그도 그대만큼 외로운 사람이기에 흔쾌히 그대의 식탁에 마주앉게 될 것이다. 주머니에 달랑 만원짜리 한 장  있어도 걱정을 말라. 제육에 소주 두병을 비울 수 있을 정도로 저렴하니 낯선 이에게 술 한병 살 수 있는 호기도 부릴 수 있는 집이다. 그렇지 않는다면 제육에 소주를 마시고 냉면 한 그릇까지 먹는 호사를 부릴 수도 있다.

 

 

5천원에 이만한 질을 가진 제육 보기 힘들다

 

 

맛객이 찾아간 그날, 그 집의 제육은 5천원짜리치고는 제법 질이 좋았다. 두께가 얇다는 걸 빼곤 나무랄 데 없는 모양새다. 누군가는 제육의 온도가 차갑다고 불평도 한다. 하지만 돼지고기의 특성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그런 불평은 무지에서 온다는 것을 금세 깨닫게 될 것이다. 찬 성질의 돼지고기는 차게 먹어도 하등의 문제될 게 없다. 오히려 차게 먹을시 식감은 더욱 좋아진다.

 

이날의 제육은 대박이다. 그렇지만 늘 이런 상태의 제육이 한결같이 나오리라는 법은 장담 못한다. 혹, 그대가 찾아간 날 이보다 못한 제육이 나오더라도 불만은 거두시길 바란다. 그래봤자 한 접시에 3천원, 5천원하니 그 가격만으로도 만족을 하게 되지 않겠는가.

 

이 집에서 또 하나 맛봐야 할 게 있다. 녹두빈대떡이다. 노릇하게 구워 나오는 모양새만 봐서는 다른 집과 비교해서 별다른 특색이 없다. 하지만 돼지기름에 굽는다면 얘긴 달라진다. 돼지기름을 녹여 독에 담아두고서 일년내내 음식을 지지는데 사용했던 그 시절의 추억을 기억하는가? 이 집의 빈대떡은 향수이다. 그런 향수가 없어도 상관은 없다. 맛으로 먹어도 그만이니까.

 

탑골공원 후문에 있는 그집... 오늘처럼 눈 내리는 날이면 빈대떡에 또는 국밥에 소주한잔으로 몸을 데우는 소시민들로 북적거릴 그집.

 

(2008.1.22 맛객) 

출처 : 맛있는 인생
글쓴이 : 맛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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