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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고려와 조선의 수도이동과정지도

정우산기 2014. 2. 13. 12:13

 

 

고려건국시기 동서3700리 남북 만리

서북으로 철륵의 땅에 닿고 남으로  절강성 월주에 닿았으며 복건천주와 대마도를 부속령으로 가지고 있었으며 후백제에 복속되었던 왜와 모인(훗카이도)도 고려에 귀속했다.

 

 

금나라발흥후 만주의 북쪽절반을 뺏겼으며 원나라에 항복한후 고려왕관할령은 천리밖에 안되었다.

 

 

 고려말 조선초개국시기 태조이성계가 서북진하여 고구려의 옛영토 절반을 수복했다. 세종은 한해(바이칼호근처)까지 정벌군을 보냈다. 세조는 황하서편을 넘어 옛 고조선의 서쪽경계인 진번(감숙성북쪽)까지 조선의 관할령으로 했다.

 임진왜란때 조선의 수도

고니시의 후손이 소장한 고지도에 그의 군대가 요동반도를 돌파하여 진군했다고 한다.

병자호란때 조선의 수도

청나라가 길림으로 군대를 보낼때 조선군 평양수비대의 대군과 전투하여 조선군 수장이 전사했다고 한다.

 

조선이 청에 패전한후  요하를 경계로 했으나 청이 다시 영토를 떼어갔다.

 

《대청일통지》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동병산(東屛山)은 복주(復州)에서 동쪽으로 10리 되는 곳에 있다. 살펴보건대, 《대명일통지》를 보면, “명산(明山)이 복주위(復州衛)에서 동쪽으로 10리 되는 곳에 있다.” 하였으며, 《원사(元史)》 지리지를 보면, “명왕산이 요양에서 동쪽으로 30리 되는 곳에 있다. 고구려 왕의 아들을 동명(東明)이라고 하는데, 그 위에다가 장사 지냈다. 지역을 가지고 상고해 보면 아마도 바로 이 산인 듯하다.” 하였다

 

 대청일통지는 1686년 제작된 것인데 현재 명산은 본계시에 있다 따라서 이당시 청나라 복주는 (현재 복주는 본계시에서 수백km남쪽에 있는 요동반도 끝부분이다. )본계시이고 본계시의 남쪽에 금주가 있었다. 금주동쪽은 예로부터 고려조선땅이니 당연히 당시의 경계를 알수 있다.

 

《요사》 지리지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동경 요양부(東京遼陽府)는 본디 조선의 지역으로, 한나라 때에는 사군(四郡)이 되었다. 진(晉)나라 때 고구려를 함락하였다. 원위(元魏)의 태무제(太武帝)가 사신을 보냈는데, 사신이 고구려 왕이 사는 평양성(平壤城)에 이르렀다. 요나라의 동경(東京)은 바로 이곳이다. ○ 요양현(遼陽縣)은 본디 한나라 때에는 패수현(浿水縣)이었다. ○ 자몽현(紫蒙縣)은 본디 한나라 때에는 누방현(鏤方縣) 지역이었다. ○ 흥주(興州)는 본디 한나라 때에는 해명현(海冥縣)이었으며, 동경에서 서남쪽으로 300리 되는 곳에 있다. ○ 숭주(崇州)는 본디 한나라 때의 장잠현(長岑縣) 지역이었으며, 동경에서 동북쪽으로 150리 되는 곳에 있다.
 
《대청일통지》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장잠현은 한나라 때에는 낙랑군에 속하였으며, 지금 조선의 경계 안에 있는바, 요나라 숭주바로 그 지역이다.

 

청나라의 동경요양성이 지금 요앙시라고 해도  대략 70km글 가면 숭주가 나오는데 그땅은 조선땅안에 있다라고 했으니 조선땅의 경계는 요양성에서 60km내외라고 보는게 옳다. 역시 본계시일대가 청나라의 경계가 된다.  

 

 

조선정조때

사방6천리라고 기록한 것이 아마도  동북끝으로는 연해주끝. 서북쪽으로는 만주의 절반이상이 우리땅이었기 떄문에 그런 기록이 남은 것 같다.

 

정조사후에 지금처럼 부패한 권력층이 권력싸움에 열중하다 강대국 청나라에 알짜베기 땅 다뺏기고 고종때 이르러서는 겨우 한반도와 간도만 차지하고 있었다.

 

자고로 어린왕이 등극하면 왕실중에 섭정왕을 뽑아 청나라 섭정왕 도르곤처럼 나라를 잘 다스리게 했어야 하는데 중신들이 서로 자기가 많이 권력을 독점하려 하다가 나라가 망했다.

출처 : 이민준비중
글쓴이 : 이민준비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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