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의영광을

[스크랩] <독자칼럼> "아리랑은 마고성 떠난 환족 찾아가며 부른 노래!"

정우산기 2008. 5. 13. 12:34
<독자칼럼> "아리랑은 마고성 떠난 환족 찾아가며 부른 노래!"
[연재] 궐한의 '역사 뒤집기' :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민요 아리랑의 기원
 
궐한

역사 학도 조차도 아닌 저에게...연제 코너까지 마련해 주신 시대소리 운영진님들의 지나친 배려..너무 당혹스럽습니다...어짜피 멍석 깔아 주셨으니...
제가 그 동안 의문으로 갔고있던 역사적 미스테리들을...여러 선생님들이 찾아 주십사...
하는 차원에서...마구잡이 제 가설을 몇번만 올려 보겠습니다

우리 한민족의 영원한 제 1 민요...아리랑...
세계의 음악학자들이 유럽에 모여...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을 선정한 결과..
우리의 아리랑이 단연 1위에 랭크됐었단 뉴스가 있었지여...

현제 한반도에서 불리우는 아리랑의 종류만도...수십가지나 있는 실정이나...
아리랑의 원류가 어디인지는...학자님들간의 의견이 천태만상인 것으로 압니다.

기본 가설들을 나열하면...

1.구한말에...경복궁 재건에 사역을 당하던 백성들이 사역길에 오르며 부른게 그 시초다.

2.신라초기 알영공주...우물에서 출연한 용의 화신..알용에서 유래한다...

3.아리랑은...슈메리안(수밀리인)과 같은 민족인...아리안을 뜻한다...이들이 동북아로 떠나면서 부른 노래가 아리랑이다...

위의 세 가지로 크게 분류가 되고 있습니다.

다 맞는 가설이라 봅니다.

전 역시...쑈킹한 걸 좋아하니..3번이 전체의 맥락이라 추측해 봅니다...


아리랑의 랑은...화랑...낭자...등 사람을 뜻한 단어였던 건 다 아실것이고...
사람을 이르는 단어는...서양에선 안,언(코리안,인디언)으로 표기하니...
랑=언=안...이라 해도 법에 않 걸릴 줄로 믿습니다.

그러나...아리...이 아리에서 우린 막혀 버립니다...
전...일부 학자님들의 알타이를 뜻하는 단어다...란 가설에 점수를 주고 십습니다...

알타이...우리 민족이 우랄 알타이어족 이라는 건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온 말이니...
우리 민족의 원류가 알타이와 관계가 아주 지대함은 눈치체셨을 겁니다.

알타이 사람을 뜻하는 단어가...아리랑이 되기에 충분하다 보는 이윱니다.

중앙 아시아인들은 알타이 산을 어떻게 발음할까여?
몽고어로 알타이는...알ㄹ타이...라 발음 합니다...타가..ㄾ의 복음입니다...

요즘..우리 국어도 날로 일본식 혀 짤븐 발음이 표준음이 되어...쌍자음이 날로 쇄퇴함은
언어적 퇴보를 의미하기에 경계해야 할 실수로 보입니다...

알ㄹ타이는...그래서 알타이와 알라리...두 음으로 발음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 아리랑의... 아라리요,,,,의 어원 돼시겠습니다.

그래요...그러오...등의 오,요...이거여...몽골에서도 똑같은 의미로 쓰이고 있습니다...
차라리 우리의 그렇습니다...습니까? 의 까, 다...가 최근 유입된 왜노식 바름으로 사료됩니다.


몽골어로...아리용(아리온)...은...순결한,순백의 란 뜻으로...여자들 이름에 많이 쓰입니다..
우리의 알용공주의 음과 너무 같지여?

답이 나왔습니다...
아리랑은...알타이&알알해(구 흑해)가 고향인 아리안 인을 의미한 겁니다...
아리랑은...순결한...순백의 인종을 이른 겁니다...
아리랑은...수메르(수밀리)인들과 사촌입니다...

위의 추론들을 적용해 보면...우리 한민족의 중간 조상은...피부가 햐얀 백인이란...
아주 충격적인 결론이 ...싫던 좋던 나오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 한민족들은 대대로 피부를 하얗게 만드는데...엄청난 공력을 기울였나 봅니다.

제 생각으론...환인(황임) 천제의 종족은...황인족이 맞을 겁니다...
이들이 북중국에 피라미드를 만들었고...그 기술이...이집트,마야,잉카까지 전수되는 겁니다...이들이 단군신화의 호족,웅족으로 사료됩니다...

이 황족은...최초 시베리아(사백력)의 바이칼을 중심으로...간빙기 때...혹한지대에 고립됨으로서...

다른 인종과는 다르게...뒷통수가 납작하고...눈꺼풀이 눈을 가늘제 덮게 되는...
본의 아니게...추위에 견디도록 진화를 격은 민족으로 보입니다.

간빙기가 지나고...중원과 시베리아의 경계가 풀리자...
이 황족들은...추위로 본의아니게 진화한 우수한 두뇌와...생명력으로...세계 곳곳으로 퍼지게 됩니다...

만주일대에 홍산문명을 건설했으니...그곳의 파라미드가.이집트보다 훨씬 앞서는데...중화는 이를 감추고 있습니다...

이들은 중원의 원주민인...앙소인(식인종)들을...점차 외곽으로..격리 시켰을 겁니다..
마침내 지구의 중심인 파미르 고원에 중심을 잡게 되니...이곳이 환국 이전의 마고성일 겁니다...

이 마고성 시대쯤부터 이미 한민족은...세계의 모든 인종을 통치하게 돼며...백인,적부인(앙소인),청색인(동남아),흑인으로 분류해서...모든인종을 교화하게 됩니다.

현 바이칼도 흑수이지만...알알해도 흑해였지여?
전 개인적으로...마고성의 환인들이...동물이나 인체에서...탄생이전의...유정란을 발견했을 거라 믿습니다...

생명의 시초가...유정란(알)임을 깨우친 이들에게서...알은 생명의 시초니...고로 알은 하는님의 상징이다...란 일종의 철학이 탄생하게 됐다 봅니다...

최초엔 그저...원시 학문,철학적 개념의 알 이론(?) 였으나...
철학적 사유가 깊지 않은 다른 인종들에게...알은 차차 하느님을 의미하는 종교가 됐을 겁니다...특히 백인들이여...

마고성(파미르&알타이)에 점점 인구가 폭증하고...식량이 부족해 지면서...마고성의 백성들은 이주를 하게 되는데....

백인들은 주로...과거의 흑해(현 알알해) 로 이주 한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흑인들이 먼저 이주한 곳이라..흑해이나...백인들에 밀려 났겠지여...

백인들은...고향인 마고성도...알(하늘,시원)성(산)이라 불렀을게 뻔 하지여...
이주지인...아랄해는...그 모양이 거대한 호수의 안에 섬이 있는...말 그대로 거대한...계란 후라이 형상이지여...

그래서 백인들은...이 거대한 신 주거지를 알알해라 칭하게 돼며...자신들을 당연히 알리한(아리안)으로 명명했을 겁니다...기독의 아라한의 원어 입니다.

세계(서방)으로 퍼져나간 알리한들은...하늘을 알로 부르는...천신신앙을 전도하게 되었고...
남방으로 밀린 흑인(파라인)들에게 까지도...도를 아십니까? 허며 집요하게 전도한 결과.

오늘날의 서남방 대륙들은...하늘님을...알라,엘로힘,알파,알...등의 계란으로 부르게 되는 이치인 겁니다.

중략하고...이들은...지배족이자 촌손족인...황족(환족)이 파라다이스를 건설했다는...
흑수(현 바이칼내지...몽골의 흡수골)로도 이주를 하게 되는데...

그 때에 부른 노래가 아리랑으로 보입니다...

아리랑은 떠나는 님을 보내며서 부른노래라기 보단...떠난 님들을 찾아 가면서 부른...
일종의 형제여~~~하는 아부성의 노래가 원조일 겁니다.

증거로 아리랑을 한 번 검색하겠습니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니도 못 가서 발병난다~~~이 대목에 빽트클을 걸겠습니다.
떠나 온건 우리 민족이면서...우리가 우리를 원망하고 있습니다...
우랄 알타이 어순을 모독하는 곡입니다...

마고산(알랄리)에서 이미 동천한...황족을 찾아 가면서...나를 버리고 가신 황족들에게...
우린 알아랄리의 형제임을 각인시키는 아부성 노래로 사료됩니다.

이들이 부여족으로 사료됩니다...고조선 중간에 역사가 누락됐지여?
오랜 이민생활에서 제대로 환국에 적응한 부여(밝,백)족들이...쿠테타에 성공함을 뜻하는 대목입니다...

불,밝,백,부르,배달등 고대 부여를 상징하는 언어들의 공통이 빛&백색을 의미하는 이윱니다.

이 때부터 부여의 단군들은...본의 아니게...알에서 탄생해야 하는 고역을 치루게 됩니다....삼국의 시조들이 모두 알에서 나와야 하는 이유가 돼겠습니다.

그래서...고구려의 중심지로 추정돼는 현 동몽골 인들이...우리 한반도 인들보다...피부가 하얀 이유가 될 겁니다.

이 때부터 한민족은 흰색을 하늘의 색으로 경배하게 됩니다...물론 계란의 노린자인 황색도...황제를 의미하는 색으로 꿰 맞춰 집니다... 황족(구 환족)과의 절충이겠져?

그러기에 우리 한민족의 원류는...아리안계 백인과...황족의 혼혈로 사료 됩니다...
유전자 검사에서...앵글로 색슨과 한민족이 같은 서열...19위에 랭크되는 미스테리의 정체입니다.

진궐(고구려)패망이후...다시 중원은...황족(환족)이 패권을 잡았을 것이며...순수 아리안들은...나머지 잔여 토지인(잔토).서유럽 해안으로 밀려났을 겁니다...

현 유럽인들은 아리안의 순수 혈통이라기 보다는...유럽 원주민들과 검은 머리의 다소 중앙아시아적 외모의 아리안들과의 혼혈족으로 사료됩니다.

이때...떠나는 아리안들을 배웅하면서...또 예의 아리랑을 불렀을 겁니다.

이후 우리 한민족은...배애와 회상에 젖을 때마다...아리랑을 불렀을 것이고...

아울러 정권 차원에서는...아리~아리랑(아리아)과 쓰리 쓰리랑(수메리안)은 아라리(알ㅌ라리)가 나았네~~~란...역사가 바뀌어도 빼도 빡도 못할...
민족 구성의 밥코드를 민요로 심어주게 돼었다는 저의 가설입니다...

뭐...역사학 하시는 선생님들이 찾아 주시라는 차원에서...
마구잡이로 제시해 보는...단순무식쟁이의 추론을 읽어 주신 극 소수 독다님들...

욕 보셨습니다...떵밟았다 생각 하십시오....!.....
 
궐한, 시대소리 독자논객
 
시대소리뉴스
http://news.sidaesori.co.kr

2006/07/23 [18:33] ⓒ 시대소리
하악하악 발기 08/01/11 [01:40] 수정 삭제
  예전에 제가 어디선가 본글인데요..
















아 리 랑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그 동안 우리들은 이 노래가 무슨 뜻인지
언제부터 불리워졌는지를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 노래의 뜻이 밝혀졌습니다.
이 노래의 뜻은 소리 그대로 "아리랑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입니다.
이것은 "아라리가 아리랑과 쓰리랑을 났네."·"아리랑과 쓰리랑은 아라리에서
태어났네."로 해석됩니다. 이것을 세계 고대사에 접목시켜 해석하면
"아리아 인(Aryan)과 수메르 인(Sumerian)은 중앙 아시아의 아랄 해(Aral Sea) 일대에서 태어났고, 이들의 일부가 한반도로 이주해 한국인의 선조가 되었다."라는 역사가
밝혀집니다. 믿기 어려운 해석이지만, 역사학계는 이러한 역사를 부정할 수 없습니다.

누가 아리랑의 깊은 뜻을?

고고학의 발달로 이집트·메소포타미아·인도·중국·그리스 등의 고대 문명들에 관한 많은 정보가 축적되면서, 이들 고대 문명들이 서로 유사한 형식의 신화와 종교 의식 등을 갖고 출발했다는 견해가 역사학계 일각에 자리잡게 되었다. 어떻게 이런 유사성이 서로 멀리 떨어진 지역들에서 여러 고대 문명들이 각각 탄생하던 초기 단계에 발생할 수 있었을까? 이런 유사성이 우연이나 문명의 전파로 발생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래서 고대 문명들을 탄생시킨 근원지가 태고 시대에 어딘가에 있었다는 주장이 나오게 되었다. 그러나 이 주장은 근원지가 어디였는지를 밝힐 수 있는 자료가 없어 인정을 받지 못하고 답보 상태에 있다.
그런데 한국의 '아리랑'과 그리스의 '알파벳'이 고대 문명들의 근원지가 어디였는지를 밝히는 키워드가 되었다. 아리랑의 노랫말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랄이가 났네."는 "아리아 인과 수메르 인은 중앙 아시아의 아랄 해(Aral Sea) 일대에서 태어났다."라는 뜻이고, 그리스 알파벳의 첫 글자 '알파(A )'는 '아랄 해와 이곳으로 흐르는 아무 다리아와 시르 다리아 두 강을 그린 그림 문자'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헛소리 같지만, 역사학계가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로 굳어지고 있다.

그 동안 한국은 아리랑의 뜻을, 유럽은 알파벳 A의 기원을 잃어버리고 있었다. 그런데도 한국은 아리랑을 지금까지 열심히 불러왔고, 유럽은 알파벳 A를 으뜸·최초란 뜻으로 대접해 왔다. 이런 역사성을 제외하곤, 아리랑과 알파벳 A는 출생지가 다르고 존재의 의미가 다르기 때문에 상호 비교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아랄이가 났네'의 '아랄'은 중앙 아시아의 '아랄 해 일대'이고 'A'는 '아랄 해 일대를 그린 지도'라고 보게 되자, 한국어가 용틀임한다. 그리스 알파벳을 비롯하여 세계의 고대 문명들이 남긴 전통 어휘들이 영어를 도우미로 하여 한국어로 해석된다. 이렇게 해석해서 얻은 자료들을 기존의 역사 자료들에 접합시켜 보면, 기원전 5000년경에서 기원전 3000년경의 태고 시대에 중앙 아시아의 아랄 해 일대에서 거대 종족들이 탄생하여 집단 문명을 일구었고, 이들이 세계 각지로 이동하여 고대 문명들을 창건했다는 사실을 비롯하여, 잊혀졌던 고대사의 참 모습들이 다음과 같이 자연스럽게 밝혀진다.
【지금으로부터 1만여 년 전에 빙하기가 끝나고 지구의 기온이 상승하면서, 중앙 아시아의 아랄 해로 흐르는 아무 다리아와 시르 다리아 두 강 일대에 거대한 초원이 형성되었다. 이곳으로 많은 동물들이 모여들면서 그 뒤를 따라 동쪽과 서쪽에서 많은 종족들이 이주하게 되었다. 기온이 가장 상승하여 비가 많이 내렸던 기원전 5000년경을 전후한 시기의 이곳 자연 환경은 큰 집단이 형성되기에 매우 적합하였기 때문에, 이곳으로 모여든 여러 원시 종족들이 두 강 유역에서 두 개의 거대 집단으로 성장하면서, 문명이 탄생하게 되었다. 이 문명이 '알알 문명'이다.
알알 문명을 일구었던 두 거대 집단은, 아랄 지역으로 이주한 여러 원시 종족들이 융화되며 새롭게 형성된, 동방계 수메르 인과 서방계 아리아 인이었다. 수메르 인들이 기원전 3500년경부터 이집트·메소포타미아·인도·중국 등지로 이동하여 고대 문명들을 탄생시킴으로써 인류의 역사 시대가 시작되었다. 아리아 인들은 기원전 2000년경부터 유럽과 인도로 이동하여 인도유럽 어족의 언어들을 형성시켰고, 그리스·로마 문명의 주체가 되었으며, 일부는 중국의 황하 유역으로 이동했다.
한국의 고인돌은 수메르 인이 남겼고, 단군 조선은 아리아 인이 세운 나라였다. 이것은 황하 유역으로 이동했던 수메르 인과 아리아 인의 주류가 한반도로 이주하여 쓰리랑과 아리랑이 되었고, 수메르 인과 아리아 인의 언어가 한국어의 기초가 되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한국어는 수메르 인과 아리아 인이 세계 고대 문명들 속에 남긴 전통 어휘들을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기존의 역사관으로는 선뜻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주장들이지만, 잘못이 있다면 그것은 이 분야의 전문가들이 이런 시각으로 고대사를 보지 못한 편견 그 자체다.
나라마다 자국 위주의 자의적인 역사 평가가 판을 지배하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역사는 진실을 추구하기 때문에 왜곡은 드러나게 마련이다. 『역사의 키워드 아리랑과 알파벳』은 세계의 거의 모든 고대 문명들이 알알 문명이란 하나의 태고 문명에서 기원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밝힘으로써, 각국의 고대 문명들에 대한, 자국 중심의 역사 왜곡을 바로잡는 계기가 될 것이다.
고려의 명승 일연(一然 1206∼1289)이 편찬한『삼국유사』에 단군 신화와 고대사에 관한 기록들이 없었다면, '아리랑'의 어원이 '아리안(Aryan)'과 같다는 주장은 나오기 힘들었을 것이고,

세계 고대 문명들이 남긴 어휘들을 한국어로 해석할 생각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정사인『삼국사기』가 기피한 고대사를 당당하게 기록했다는 것은 용기 있는 일이었고, 그 기록을 통해 한국을 비롯하여 세계의 고대사를 바르게 볼 수 있게 되었으니 업적을 기리지 않을 수가 없다.

『역사의 키워드 아리랑과 알파벳』은 『알알 문명』의 개정판이다. 아직 부족한 점이 많지만 역사학계에 새 바람을 일으키기에는 충분할 것 같다. 이래도 바람이 일지 않는다면, 하늘 탓이 아니고, 태어나기 위해서는 깨야 할 벽이 있다는 뜻일 것이다.
문헌에 기록되어 있어야만 역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아리랑과 알파벳은 기록 그 이상의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항상 옆에 두고도 너무 오래되어 역사를 잊어버림으로써 그 뜻을 몰랐었던 것이지, 새로 만든 것들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리랑과 알파벳은 살아있는 기록이다. 살아있는 기록에 근거한 이 책을 한국 역사·언어학계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면, 비난받을 날이 올 수 있다. '알알 문명'이 역사적 실체라면 새로운 증거들이 속속 밝혀질 것이고, 그 때는 너무 늦기 때문이다.
이제, '아리랑'과 '알파벳'의 해석은 한국 역사·언어학자들의 몫이다. '내 전공이 아니라서'라는 무관심을 접고, 소신을 밝힐 수 있는 학자들이 언제쯤에나 나오게 될까? 장르가 없어진 것도 아닌데 문외한이 아직도 떠벌려야 하는, 기가 막힌, 현실이 안타깝다. 누가 아리랑의 깊은 뜻을? 역사여 말하라!

2002년 7월 오 광 길


제1장 아리랑과 알파벳의 뜻 - '아리랑'은 아리안(Aryan)'이다.

'아리랑'은 '아리안(Aryan)'이다.

"한국인은 노래를 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어서 새처럼 노래한다. …… 한국인에게 아리랑은 쌀이다. 아리랑은 쌀이다." 이 말은 19세기말 한국에서 기독교 선교 활동을 하던 미국인 선교사 헐버트(H.B. Hulbert) 박사가 당시에 발간된 한 선교 잡지에 기고한 글의 일부다. (주 1-1)

"한국인은 새처럼 노래한다."라는 말에 공감이 간다. 옛 문헌에도 한국의 선조들이 노래와 춤을 좋아 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런 전통이 있어, 한국인들은 지금도 노래방과 관광 버스 속에서 노래 하기를 좋아한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공감이 가는 지적을 한 것으로 볼 때 "한국인에게 아리랑은 쌀이다."라는 말 또한 올바른 지적이었다고 보지 않을 수가 없다. 당시에 한국 사람들이 아리랑을 얼마나 자주 즐겨 불렀고, 얼마나 일상 생활화되어 있었던 노래였으면 이런 표현을 다 했을까?
두고두고 음미해 볼 가치 있는 기록이다.
'아리랑'은 무슨 뜻일까? 아리랑의 기원에 관한 몇 가지 설이 있지만, 정설은 없다. 설마다 역사 성이 미흡하고, 아리랑에 관한 옛 기록이 거의 없어 고증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아리랑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문헌은 19세기초의 것이다. (주 1-2)
19세기초에 나온 노래가 19세기말 전국에 유행되어 외국인이 한국인의 쌀이라고 평가했을 정도 로 많이 불리어졌다면, 시간적으로 볼 때, 노래에 얽힌 사연들이 전해져야 마땅하다. 하지만 아리랑의 기원이 전해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볼 때, 기원을 잃어버릴 만큼 아리랑의 역사가 오래 된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19세기 이전의 문헌이나 노래 책에 아리랑이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당시에는 아리랑이 인기가 없었을까? 기원을 잃어버릴 만큼 오래된 노래가 쌀이라고 이를 만큼 일상 생활 속에서 자주 불리어졌다면, 너무 통속적이고 흔해서 책에 수록할 필요성이 없었던 노래였기 때문이란 역설이 가능하다.
아리랑은 종류가 많고 내용이 다양하지만, 가사에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나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란 노랫말이 있다.
이 노랫말들은 무슨 뜻일까? 소리가 있으면 뜻이 있게 마련인데 전해지는 것이 없어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이 노랫말들 속에 깊은 뜻이 담겨 있었다고 보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리랑이 86 아시안 게임·남북 정상 회담·김대중 대통령 노벨 평화상 시상·2002 월드컵 등과 같은 굵직한 행사장에서 울려지고 불리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세월이 흐르며 잊혀졌지만, 콧소리로 보기엔 생명력이 너무 강하고, 쌍소리로 보기엔 친근성이 너무 크다. 분명한 것은 아리랑이 서로를 끌어당기는 한국적 끈끈한 정으로 자연스럽게 의식화되었다는 사실이다. 오래되었다는 사실 하나로 이 끈끈한 정이 생겼다고 보기는 어렵다. 아리랑의 노랫말들 속에 처음부터 끈끈한 정이 담겨 있어 어려울 때 서로를 끌어당기는 힘이 됨으로써, 아리랑은 끈질기고도 강한 생명력 을 갖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제2장 수메르 인과 아리아 인의 탄생과 이동

- 역사는 아랄(Aral)에서 잉태되었다.

역사는 아랄(Aral)에서 잉태되었다.

영어 알파벳의 뿌리인 그리스 문자가 한국어와 영어로 해석됨으로써, 알파벳은 그림 문자에서 기원했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영어에 한국어와 뿌리가 같다고 볼 수 있는 어휘들이 최소200여개 있다는 사실도 확인되었다. 이 같은 사실들은 아스라하니 먼 옛날에 하나의 언어권에서 살던 종족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그리스·영국·한국 등으로 각각 이주한 역사가 있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언어 자료들만으로는 역사 시대의 시작을 전후한 시기에 있었던, 종족들의 이동 역사를 명확하게 증명하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이 언어 자료들을 이미 잘 알려진 역사 자료들에 접합시켜 볼 필요가 있다. 이렇게 될 때, 언어와 역사 중의 어느 한쪽 자료만으로는 알 수 없었던, 잊혀졌던 역사가 밝혀질 것이라고 기대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대전제 "아리랑은 아리아 인, 쓰리랑은 수메르 인, 이들의 원주지는 중앙 아시아의 아랄이다."가 역사적 사실이라면, 인도유럽 어족에 속하는 여러 언어들을 파종한 아리아 인은 이동 규모로 볼 때, 아랄 지역에서 대단히 큰 집단을 이루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또, 수메르 인이 메소포타미아로 이동하여 수메르 문명을 일으켰고 다른 한 갈래가 한반도로 이동하여 쓰리랑이 되었다면, 그들 역시 아랄 지역에서 큰 집단을 이루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선사 시대에 한 지역에서 두 개의 거대 집단이 형성되었다는 것은 특이한 일이다. 아랄의 자연 환경과 지리적 여건이 두 집단의 탄생을 가능하게 했다고 볼 수 있다.

아랄(Aral)의 자연 환경

아랄 해(Aral Sea)는 중앙 아시아에 있는 면적 약 6만 6천km2의 염호다. 남쪽에서는 아무 다리아 강이, 동쪽에서는 시르 다리아 강이 유입된다. 물이 밖으로 흘러 나가는 출구가 없는 무구호다. 이 지역의 연간 강수량은 100mm 내외다. 겨울철 1∼2월의 평균 기온은 북부는 -12℃,남부는 -6℃이다. 11∼12월부터 아랄 해는 결빙된다.
이상은 1960년대 초의 기록이다. 40여 년이 지난 지금 아랄 해는 전체의 수량이 감소되며 염분농도가 높아져 죽음의 바다로 되어 가고 있다. 아무 다리아 강과 시르 다리아 강의 물을 농공업 및 생활 용수로 끌어쓰는 양의 증가로 유입되는 물의 양이 감소되어, 아랄 해의 면적이 2만 5천㎢대로 줄어들었고 앞으로도 더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아랄 해의 옛 모습은 상상 속에서만 그려 볼 수 있게 되었다.
오늘의 이곳 자연 환경은 태고 시대에 이곳에서 세계 고대 문명들의 기원이 되었던 모태 문명이발생했다고 보기에는 너무나 건조하고 삭막하다. 하지만 기원전 5000년∼기원전 3000년에 이르는 기간에는 비가 많이 내렸기 때문에 이곳 자연 환경은 지금과는 달랐다고 볼 수 있다. 지구의 기온은 지금으로부터 1만여 년 전에 빙하기가 끝나고 서서히 상승하여 기원전 5000년경에 가장 높아졌다가 약간 내려간 상태에서 기원전 3000년경까지 유지되다, 그 후 차츰 떨어져서 서력 기원 전후부터는 오늘날과 비슷해졌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밝혀졌다. 따라서 기원전 5000년 ∼기원전 3000년에 이르는 기간에는 빙하가 많이 녹아 해수면이 높아졌었고, 습도가 높아 비가 많이 내렸다고들 본다. 이 기간이 홍수 시대다. 홍수 시대에는 오늘날 건조한 기후로 인해 사막이 발달된 대부분의 지역들에도 비가 많이 내렸기 때문에 초원과 숲이 형성되어 있었을 것이다. 중앙아시아의 아랄 해 일대에도, 지금은 사막이 발달되었지만, 홍수 시대에는 거대한 초원과 숲이 형성되어 있었을 것이다.
석기 시대에 큰 집단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식량 자원이 풍부해야 했다. 그러므로 거대한 초원은 고대 문명들을 탄생시킨 필수 조건이었다. 하지만, 충분 조건은 아니었다. 수렵만으로는 식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없어, 큰 집단의 형성과 유지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큰 강 유역의 충적 지대에서 농경이 가능해야 했다. 바다, 온대성 기후 등도 큰 집단을 형성하고 유지하는 데 필요한 조건들이었다. 아랄은 이런 자연 조건들을 잘 구비하고 있었다. 아랄뿐만 아니라 세계 4대 고대 문명의 발상지들인 메소포타미아의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두 강, 이집트의 나일 강, 파키스탄의 인더스 강, 중국의 황하 유역 등에도 이런 자연 조건들이 잘 갖추어져 있었다. 그런데 아랄 지역에서 다른 지역들보다 훨씬 먼저 문명이 탄생될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홍수 시대의 시각으로 홍수 시대를 보아야 홍수 시대의 역사가 풀린다.

홍수 시대의 아랄 지역을 홍수 시대의 시각으로 보게 되면, 아랄 지역에는 다른 지역들보다 문명의 탄생에 유리했던 다음과 같은 특성들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 아랄 해로 흐르는 아무 다리아와 시르 다리아 두 강 유역의 충적 지대에서는, 다른 지역들에 비하여, 농경이 발달할 수 있었다. 홍수 시대에는 기온이 높아 열대성 저기압이 형성되기가 쉬웠기 때문에 태풍과 같은 폭풍우가 많이 발생하였을 것이다. 따라서 홍수 시대의 절정기였다고 볼 수 있는 기원전 5000년에서 기원전 3500년에 이르는 기간에 이집트의 나일 강, 메소포타미아의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 두 강, 파키스탄의 인더스 강, 중국의 황하 유역은 여름에 강우량이 많아 범람이 심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이들 강 유역의 충적 지대에서는 봄에 씨를 뿌려 놓아도 여름 홍수로 농사를 망치는 경우가 많아 농경이 발달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홍수 시대에 이들 지역에서는 식량의 부족으로 큰 집단들이 형성될 수 없었기 때문에 문명이 발달할 수 없었다.
그러나 당시 아랄 해 일대의 자연 환경은 달랐다. 아랄 지역의 광활한 평원은 거대한 산맥들이 동·서·남쪽을 에워싸고 있어 비구름의 진입이 어려워 홍수 시대에도 강우량이 비교적 적었기 때문에, 여름에 홍수가 자주 일어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봄에는 사정이 달랐다. 홍수 시대에는 눈도 많이 내렸을 것이므로, 아랄 해로 흐르는 아무 다리아와 시르 다리아 두 강 상류의 높고 거대한 산악 지대에 겨우내 쌓였던 많은 양의 눈이 봄에 녹아 흘러내렸기 때문에 강들이 크게 범람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봄에 눈 녹은 물로 인한 범람이 여름에 홍수로 인한 범람보다 심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이 홍수 시대에 아랄 지역에서 농경이 발달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인이었다. 봄에 강물이 불어났다가 빠진 비옥한 충적 지대에 씨앗을 심어 놓으면, 여름에는 강우량이 적어 강들이 봄보다 크게 범람하지 않아, 홍수로 인한 피해를 입지 않고 가을에 곡식을 수확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2) 아랄 지역에서는 동서의 원시 문명들이 대규모적으로 충돌하게 되었다. 빙하기가 끝나기 전 이곳은 추위가 심해서 많은 사람들이 큰 집단을 이루고 살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지구의 기온이 상승하면서 이곳에 형성된 초원 지대로 동물들이 모여들게 되었고, 그 뒤를 따라 서방계 종족들과 동방계 종족들이 이주해 오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이 만남으로써 인류 역사상 최초로 동서의 원시 문명들이 대규모적으로 오랜 기간 충돌하며, 집단 문명이 탄생하게 되었다. 아랄 지역에서 이런 충돌이 없었다면 인류 문명의 탄생은 훨씬 더디었을 것이다.

(3) 아랄 지역에는 '아무 다리아'와 '시르 다리아'라는 두 강이 있어 두 개의 집단이 형성될 수 있었다. 이웃하고 있는 두 강 사이의 거리는 인구가 적었던 초기에는 상대적으로 멀었기 때문에 서방계 종족들과 동방계 종족들은 강을 하나씩 차지하고 상호 대립하며 각각 거대 집단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강이 하나밖에 없었거나 너무 가까이 있었다면, 처음부터 종족들간에 충돌이 심해 농경이 안정적으로 발달할 수 없어 큰 집단들이 형성되기 어려웠기 때문에, 문명의 탄생은 훨씬 더디었을 것이다. 두 집단의 인구가 증가하면서 두 강 사이의 거리가 상대적으로 좁혀지게 되었다. 이로써 두 거대 집단은 생존이 걸린 충돌을 피할 수 없게 되었고, 이 치열한 경쟁 속에서 터득한 생존을 위한 철학이 거대 집단의 형성을 지향함으로써, 문명의 발달이 촉진되었다고 볼 수 있다.

제3장 한국으로 이동한 수메르 인과 아리아 인

- '조선'은 '조이 선(joy sun)'이다.

'조선'은 '조이 선(joy sun)'이다.

고고학적으로만 추리가 가능했던 태고 시대의 인류 역사가, 아리랑과 알파벳의 뜻이 해석됨으로써, 언어를 통해 보다 확실하게 다음과 같이 밝혀지게 되었다. "빙하기가 끝나고 기원전 5000년경을 전후하여 중앙 아시아의 아랄 해(Aral Sea) 일대로 모여든 동서의 원시 종족들이 수메르 인(쓰리랑)과 아리아 인(아리랑)이란 두 거대 집단으로 성장했고, 이들이 이동하여 세계의 거의 모든 고대 문명들을 탄생시키는 주체가 되었다." 수메르 인과 아리아 인의 이동은 너무나 오래 전에 있었던 일이어서 그들의 역사는 이주지에서 신화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각국의 건국 신화에는 수메르 인이나 아리아 인의 역사가, 또는 이 두 종족의 역사가 함께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한국의 건국 신화인 단군 신화에도 이들의 이동 역사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근거하여 "단군 신화에 나오는 환웅의 무리는 아리아 인이고, 웅녀는 수메르 인이다."라고 보게 되면, 단군 신화는 자연스럽게 역사로 환원된다. 너무 의외의 일이어서 선뜻 받아들이기가 어려울 뿐이지, 이것은 부정될 수 없는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란 것이 언어를 통해 증명된다.

다음은 고려 때 일연(一然)이 편찬한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는 '단군 신화'를 요약한 것이다. (주 3-1)

【 위서(魏書)에 이르기를 "지나간 2천년 전에 단군왕검(檀君王儉)이라는 이가 있어 아사달(阿斯達)에 도읍을 정하고 국호를 조선(朝鮮)이라고 하였으니 고(高)와 같은 시기였다." 고기(古記)에 이르기를, "옛날에 환인(桓因)의 서자 환웅(桓雄)이 … 무리 3천명을 거느리고 내려와 태백산(太白山) 꼭대기 신단수(神檀樹) 아래 이르러 여기를 신시(神市)라 했다. 이 분이 환웅천왕(桓雄天王)이시다. … 그 시절에 곰 한 마리와 범 한 마리가 있어, 같은 굴에 살면서 신령스런 환웅에게 사람으로 화하게 해 달라고 늘 빌었다. … 환웅이 신령한 쑥과 마늘을 주고, 이것을 먹고 백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의 형체로 되리라 하였다. 곰과 범은 그것을 먹고 스무 하루[三七日] 동안 기(忌)를 하여, 곰은 여자의 몸으로 되었으나, 범은 기(忌)를 못해서 사람의 몸으로 되지 못하였다. … 환웅이 웅녀(熊女)와 혼인하여 아들을 낳으니 이 분이 단군왕검(檀君王儉)이시다. 그는 … 평양성(平壤城)에 도읍하고 조선(朝鮮)이라 일컬었다. 또 도읍을 백악산(白岳山) 아사달(阿斯達)로 옮겼는데 여기를 궁홀산(弓一作方忽山) 또는 금미달(今彌達)이라고도 하니 …" 】

환인(桓因)은 '카인(Cain)'이다.

환인의 서자 환웅이 무리 3천을 거느리고 내려왔다는 기록은 그들이 어딘가에서 이주해왔다는 뜻이다. 그들은 어디서 왔고, 어떤 종족이었을까?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단군 신화는 신화의 굴레를 벗을 수가 없다. 대전제를 역사적 사실로 보면, 환웅의 무리는 수메르 인이거나 아리아 인이다. 그러므로 수메르 인과 아리아 인의 자취를 세계의 신화와 역사 속에서 찾아 그것을 환웅의 무리에 연계시켜 보면, 환웅의 무리가 어떤 종족이었다는 증거를 찾을 수가 있을 것이다.

(1) 메소포타미아의 갈대아(Chaldea) 우르(Ur)에서 가나안으로 이주한 아브라함(Abraham)은 아담(Adam)과 이브(Eve)의 셋째 아들 셋(Seth)의 후손으로『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갈대아 우르는 수메르 인의 도시 국가였고, 아브라함은 수메르 인들의 도시 국가들이 멸망한 뒤에 가나안으로 이주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메소포타미아에서 수메르 문명을 일으켰던 수메르 인의 후손일 가능성이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수메르 인은 셋의 후손이다.

(2) 셋의 후손들이 쓴『성경』에 나오는 인명·지명들 중에는 한국어와 뜻이 연계되는 것들이 있다. 이것은 셋의 후손들 중의 일부가 한국으로 이동했다는 증거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한반도로 이주한 셋의 후손은 쓰리랑 즉 수메르 인이다. (주 3-2)

(3) 이집트의 통일 신화에 나오는 셋(Seth)은, "수메르 인이 세계 4대 고대 문명들을 창건했다." 에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아랄에서 이동한 수메르 인이다. 위와 같이 아담과 이브의 삼남 셋(Seth)이 수메르 인이라면, 수메르 인과 아리아 인은 아랄 지역에서 태어났으므로, 장남 카인(Cain)은 아리아 인이다. 이것은『성경』「창세기」에 아랄의 역사가 압축되어 있다는 뜻이다.『성경』에 기록된 '카인·아벨·셋'의 이야기를 역사로 복원시키면 다음과 같다. 장남 카인은 농사하는 자로 기록되었다. 장남이란 기록은 카인 족이 제일 먼저 아랄 지역으로 이주하였다는 뜻이고, 농사하는 자란 기록은 일찍부터 비옥한 삼각주 일대를 차지하고 농경을 시작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카인은 지중해 일대에서 빙하기를 지내다가 지구의 기온이 상승하면서 아랄 해 일대로 이주한 백인계였다고 볼 수 있다. 카인의 후예들이 아리아 인이다. 차남 아벨(Abel)은 양치는 자이며 카인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기록되었다. 이 기록은 아벨 족이 두 번째로 이주했고, 유목민이었으며, 아리아 인이 아벨 족을 쫓아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아벨 족은 아프리카에서 아랄 지역으로 이주한 흑인계였다고 볼 수 있다. 아벨 족의 일부가 동쪽으로 이동하여 일본의 아이누(Ainu)가 되었고, 아이누가 흑인계였다고 볼 수 있는 언어의 자취와 유전학적 증거가 있기 때문이다. (177쪽 '흑해', 279쪽 '아이누는 아프리카 인의 후예다.' 참고)
삼남 셋은 아벨이 카인에게 죽임을 당한 뒤에 태어났다고 기록되어 있다. 셋은 동북아시아에서 이주한 동방계 종족이었다고 볼 수 있다. 셋의 후예들이 수메르 인이다.
이상은 추리에 불과하지만 당시의 상황과 연계시켜 보면, 역사성이 충분하다. 당시 아랄 해의 남쪽 산악 지대는 원시 상태였기 때문에 남쪽에서의 인구 유입은 거의 없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아랄에서 가까운 지중해 일대에서 살았던 백인계인 카인 족이 제일 먼저 이주했다고 볼 수 있다. 아프리카 계인 아벨 족은 거리가 멀어 유입된 수가 적어 카인 족의 힘에 밀렸기 때문에 다른 곳으로 다시 이동했다고 볼 수 있다. 동북아시아계인 셋 족은 제일 늦게 이주했지만 계속 유입되었기 때문에 카인 족과 대치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인구의 증가로 종족들간의 충돌이 빈번해지면서, 셋 족 즉 수메르 인들은 기원전 3500년경부터 세계로 이동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단군 조선이 건국된 '지나간 2천년 전'은 기원전 2000년경이다. 이 시기에 아랄에서 이동한 종족은 아리아 인이므로, 환웅의 무리는 아랄에서 동쪽으로 이동한 아리아 인으로 볼 수 있다. 또, 환웅의 아버지 '환인'은 '카인'과 어원이 같다고 볼 수 있으므로, 환웅은 수메르 인이 아니고 아리아 인이다. '환인(桓因)'이란 말은 동쪽으로 이동한 아리아 인의 기록이고, '카인(Cain)'이란 말은 메소포타미아로 이동한 수메르 인의 기록이어서 발음에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둘은 알알 문명의 신화에서 기원한 동일체라고 할 수 있다.

제4장 고대 한국어의 보고·『일본서기』

- 일본 신화 시대의 신들은 고대 한국인이다.

일본 신화 시대의 신들은 고대 한국인이다.

일본은 청동기 시대를 거치지 않고 기원전 3∼2세기경부터 석기 시대에서 청동기 및 철기 시대로 동시에 진입했다. 고고학을 통해, 기원전 3∼2세기경부터 북부 규슈의 일각에서 갑자기 철기 문화가 일어나 동쪽으로 파급되었다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 철기 문화가 야요이 문화다. 야요이 문화의 특징은 청동기 및 철기와 고온에서 열처리된 새로운 형태의 양질의 토기가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생활 도구의 갑작스런 발전이 무역을 통해 이루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 변화는 이런 도구들을 만들 줄 아는 기술을 가진 종족 집단이 일본으로 대거 이주했기 때문에 생겼다고 할 수 있다. 왜냐 하면, 대륙에서 1천여 년 이상 지속된 청동기 시대를 일본이 거치지 않았다는 것은 이전까지는 대륙과의 교역이 이루어지지 않았었다는 뜻인데, 갑자기 제반 여건이 성숙되며 교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는 역사적인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어디서 어떤 종족이 북부 규슈로 이주했을까? 지리적으로 보나 출토된 유물·유적의 양식으로 보나, 그들은 한반도에서 이주한 고대 한국인이었다. 그러나 이것을 입증할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가 없기 때문에, 일본의 역사학계는 이런 사실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이것을 인정하게 되면, "고대 한국인의 일부가 일본으로 이주하여 일본의 신화 시대를 지배했고, 일본 천황의 시조는 고대 한국인이었다."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일본 역사학계가 갖고 있는 첫째 목표는 고대 한국인이 일본의 신화 시대를 지배한 신들이었다는 사실을 철저히 감추고 부정하는 일이다. 천황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했던 선택이었다.
그러나 일본의 신화 시대에 신들이 사용한 언어가 고대 한국어였다는 사실이 확인됨으로써, 일본의 신화 시대를 지배한 신들은 한반도에서 이주한 고대 한국인이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게 되었다. 일본으로서는 자존심 상하는 기막힌 일이어서 인정할 수 없겠지만, 그럴 수도 없는것이 신들이 사용한 언어가 고대 한국어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기록들이 다름 아닌 일본의 국보인『일본서기(日本書紀)』에 있기 때문이다.
『일본서기』는 서기 720년에 편찬된 일본의 역사책으로서, 신화 시대에서부터 7세기까지의 일본 고대사가 기록되어 있다. 전체 30권 중에서 권제1·2·3에 신들의 계보, 천손 강림 신화, 야마토 지역을 정벌하고 제1대 신무 천황이 즉위하기까지 신화 시대의 이야기들이 기록되었다.
이 신화 시대에 나오는 신들의 이름이나 지명 등에 쓰인 한자를 일본에서 읽어 온 그 소리들이 고대 한국어인 것이다.
『일본서기』의 편자는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던 신들의 이름·지명 등을 한자로 기록하면서 뜻과 소리를 둘 다 함께 살려 표기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뜻에 치우쳐 표기하고, 중요한 것들을 골라 그것들의 원래 소리를 한자음으로 기록해 놓았다. 그리고 원래 소리를 적은 한자들을 일본어로 읽는 소리가 일본 문자인 가나로 기록되어 전해지게 되었다. 이로써 신화 시대에 신들이 사용한 이름·지명 등의 원래 소리가 전해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일본은 이 소리들에 무슨 뜻이 있는지를 모르고 있다. 소리가 있으면 뜻이 있게 마련인데, 뜻은 잊혀지고, 이 소리들은 신화 시대에 신들이 사용한 언어로만 여겨지고 있다. 그래서 원래의 소리를 기록해 놓음으로써 선대의 역사와 전통이 후대에 이어지기를 기대했던 편자의 의도가 빛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고대 한국인들이었던 수메르 인과 아리아 인의 일부가 일본으로 이동했다는 시각을 갖고 이 소리들을 풀이한 결과, '이 소리들은 고대 한국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편자의 의도가 이제 빛을 보게 된 것이다.
2천여 년 전과 오늘의 말소리가 별 차이 없이 들리고 뜻이 통한다. 그래서『일본서기』는 고대 한국어의 보고다. 그 동안 이 소리들이 고대 한국어란 사실을 몰랐던 까닭은 이 소리들에 아리아 어가 포함되어 있어 해석이 되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원래의 소리를 적어 놓은 한자들이 암호처럼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일본서기』에 는 신들이 어디에서 일본으로 왔다는 구체적인 기록이 없다. 이것은 당시의 정치 상황이 한반도에서 이주해 왔다는 사실의 기록을 허용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래서 편자는 원래의 소리들을 기록하면서 간접적으로 이 소리들이 한국어라는 사실을 은연중에 알리려고 계획적인 모험을 시도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 않고는 이렇게 꼭 필요한 말들을 선별하여, 치밀하게 때로는 대담하게 기록할 수 없었을 것이다. 편자는 이 소리들의 뜻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기록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원래의 소리를 전하기 위하여 기록해 놓은 한자를 일본에서 읽는 소리가 고대 한국어란 사실은 일본 신화 시대의 신들은 일본으로 이주한 고대 한국인이었다는 뜻이다. 또한 이것은 일본으로 이주한 고대 한국인은 수메르 인과 아리아 인이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언어 증거들이다.
수수께끼로만 여겨졌던 일본 신화 시대의 신들이 사용했던 어휘들이 해석됨으로써, 지금으로부터 2천여 년 전인 한국 삼한 시대의 언어를 편린이나마 알 수 있게 되었고, 수메르 인과 아리아인이 아랄 지역에서 동쪽으로도 이동했다는 사실을 일본 역사를 통해서도 알 수 있게 되었다.
원래의 소리가 따로 표기되지 않은, 신들의 이름과 지명 등에도 일본어로 읽는 소리가 고대 한국어였다고 볼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이런 어휘들도 그 소리들을 해석해 보았다.

▷ 역사의 키워드 아리랑과 알파벳 [ 토론장 ]

너무 의외의 이야기들이고, 진위를 가릴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이 없어 선뜻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주장들이다. 그래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랄이가 났네."의 뜻은 "아리아 인과 수메르 인은 중앙 아시아의 아랄 해 일대에서 태어났다."이고, 알파벳 'A'는 중앙 아시아의 아랄 해 일대를 그린 그림 문자란 사실이다. 여기에 이의는 없을 것이다. 왜냐 하면, 세계의 고대 문명들이 남긴 어휘들을 한국어와 영어로 해석하여 얻은 자료들을 기존 역사 자료들에 접합시켜 보면, 아랄 해 일대에서 수메르 인과 아리아 인이 탄생했고, 이들이 세계로 이동하여 거의 모든 고대 문명들을 탄생시킨 주체가 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리랑'과 '알파벳'은 반드시 짚고 넘어야 할 '역사의 화두'다.
세계의 고대사를 지금까지 이렇게 보지 못했던 까닭은 역사 시대 이전인 태고 시대에 대한 이해 부족이었다. 당시는 수렵 채취에 주로 의존했던 시기여서, 안정적으로 식량 확보가 어려워, 거의 모든 고대 문명들의 근원이 될 만한 큰 규모의 집단 문명이 어디에서도 발생했었다고 보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68쪽에서 이야기하였듯이, 홍수 시대의 시각으로 아랄 해로 흐르는 아무 다리아와 시르 다리아 두 강 일대를 보게되면 생각이 바뀌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홍수 시대에 두 강 유역의 충적 지대에서 농사가 대규모적으로 이루어졌다. 봄에는 두 강 상류의 산악 지대에 겨우내 쌓였던 많은 눈이 녹아 흘러 큰 홍수가 나고, 여름에는 강우량이 적은 지역이라 큰 홍수가 나지 않아, 봄에 홍수로 비옥해진 충적 지대에 씨를 심어 놓으면 여름에 홍수 피해 없이 가을에 곡식을 수확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농경이 수렵 채취를 보완함으로써 인구가 증가하게 되었고, 더불어 두 강을 각각 차지하고 대립한 동서의 종족들 사이에 긴장이 증가하게 되었다. 이 긴장 속에서 큰 집단을 위한, 큰 집단에 의한 새로운 문명이 탄생되었다.
추리에 불과하다고 반박할 수 있겠지만, 한국어와 영어로 고대 문명들이 남긴 전통 어휘들을 해석하여 얻은 언어 자료들이 이미 밝혀진 여러 분야의 자료들과 부합된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다른 언어들이 이런 흉내를 낼 수 없다는 것은 한국어와 영어의 이 같은 역할은 역사에 기초되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역사 시대의 시작을 전후한 기간에 있었던 세계의 고대사에 관한 새로운 사실들이 많이 밝혀질수록 이 책의 주장들은 더욱 분명해질 것이다.
인류 문명의 모태인 알알 문명에 대한 연구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므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이 있다.
언어학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는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 어, 한국어, 인도의 드라비다 어, 영어가 상호 어떤 관계를 갖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일이다.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 어와 한국어가 같은 계통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지만, 확신을 주지는 못하고 있다. 수메르 어가 설형 문자로 기록되어 있어 원래의 소리를 확인하기가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드라비다 어와 한국어의 관계를 좀더 밝히는 일은 그리 어렵지가 않을 것이다. 이 4언어의 상호 관계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될 때, 수메르 인들과 아리아 인들의 이동을 확인할 수 있는 새로운 자료들이 많이 나올 것이다.
고고학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는 아랄 해의 두 강 유역 일대에서 기원전 3천년 이전에 거대한 집단 문명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유물·유적들을 찾아 발굴하는 일이다. 시르 다리아 강 유역에서는 수메르 인들의 '테베' 즉 '텃밭'이었다고 볼 수 있는 유적들을, 아무 다리아 강 유역에서는 아리아 인들의 '솔즈베리' 즉 '서울'이었다고 볼 수 있는 유적들을 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알알 문명은 태고 시대에 아랄 해 일대에 존재했던 실체였고 오랜 기간 지속되었다고 볼 수 있으므로, 유적들의 규모는 크지 않더라도, 여러 곳에서 찾을 수가 있을 것이다. 문제는 유적들을 찾는다 하더라도 그것들이 현재 이 지역을 장악하고 있는 종족들의 것이 아니고, 수메르 인과 아리아 인의 것이라고 어떻게 입증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쉬운 문제는 아니지만, 장례 방식에 차이가 있었다고 볼 수 있으므로, 불가능한 문제는 아닐 것이다.

알알 문명이 탄생·성장·이동·소멸하는 과정의 큰 줄기는 인류의 의지보다는 자연 환경에 적응해야 되는 인류가 걸어야 했던 필연적인 사건들의 연속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고비 때마다 인류는 많은 문제들을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인류는 지금도 해결해야 할 많은 문제들을 갖고 있다. 문제 해결의 길을 역사 속에서 찾을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미래는 과거에 없던 새로운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역사를 통해 그래도 짐작해 볼 수 있는 것은 흐름의 방향이다. 고대 문명들이 남긴 전통 어휘들 중에는 당시의 종교와 관련된 것들이 많다. 이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종교가 고대 사회에서 일상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류는 신을 창조함으로써 씨족 사회를 벗어나 집단 문명을 일굴 수 있었다. 신은 사랑과 자비를 행하는 인간의 미래에 희망을 주는 힘이 됨으로써, 큰 집단의 형성과 유지에 기여한 긍정적인 면이 크기 때문이다. 신은 현대와 미래 문명에도 유효하다. 신을 부정하는 사람은 무한 자유를 누리기 때문에 신뢰성에 문제가 있다. 그러므로 신을 부정하는 무신론에 기초된 사상으로는 상호 신뢰성에 기초된 현대 문명을 유지 발전시킬 수가 없다. 그렇다고 절대적 유신론이 유일한 대안은 아니다. 무신론에서 유신론이 나왔으므로 둘은 인류 문명이 존재하는 한 공존 대립할, 이중성에 기초된, 영원한 대립쌍이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신들의 수가 많았고, 이기적인 성향이 강했던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역사는 "신은 다양해도 그 실체는 하나고 모두에게 공정하다."라는 결론을 향해 흐르고 있다. 그래서 21세기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패러다임은 '기존의 모든 것을 인정하며 포용할 수 있는 보편성'과 '자연 과학을 지배할 수 있는 절대성'을 갖고 있어야 합리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안파견환인의 역사 블로그
글쓴이 : 안파견환인천상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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