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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윤여동설 - 신라 왕릉들은 과연 지금의 어디에 조성했을까?

정우산기 2008. 6. 3. 11:37

신라 왕릉들은 과연 지금의 어디에 조성했을까?

 

진황도 조산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의한 신라 왕릉의 조성위치
 
 시조 혁거세거서간의 능은 담암사 북쪽(曇巖寺北) 사릉(蛇陵)
  ☆ 삼국유사에는 "나라를 다스린 지 61년 되는 어느 날 왕은 하늘로 올라갔다. 7일 뒤에 유체가 흩어져 땅에 떨어졌는데 왕후 역시 죽었다. 나라 사람들이 이들을 합해서 장사지내려 했으나 큰 뱀이 방해하므로 오체로서 오릉을 만들고 사릉(蛇陵)이라고 했다. 담엄사(曇嚴寺) 북릉이 이것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2대 남해차차웅의 능은 사릉원내(蛇陵園內)
 3대 유리이사금의 능은 사릉원내(蛇陵園內)
 4대 탈해이사금의 능은 금성 북쪽 양정구(金城北 壤井丘)

  ☆ 삼국유사에는, 재위 23년인 건초 4년 기묘에 죽어 소천구(疏川口) 속에 장사지냈다가 파내어 소상을 만들어 동악에 안치했다고도 하고, 왕이 죽자 미소소정구 가운데 수장했다가 뼈로 소상을 만들어 동악에 안치했는데 지금의 동악대왕이다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뼈를 갈아 흙과 버무려 소상을 만들었던 것은 확실한 듯 하다. 

 5대 파사이사금의 능은 사릉원내(蛇陵園內)
 6대 지마이사금의 능에 관한 기록이 없음
 7대 일성이사금의 능에 관한 기록이 없음
 8대 아달라이사금의 능에 관한 기록이 없음
 9대 벌휴이사금의 능에 관한 기록이 없음
10대 나해이사금의 능에 관한 기록이 없음
11대 조분이사금의 능에 관한 기록이 없음
12대 점해이사금의 능에 관한 기록이 없음
13대 미추이사금의 능은 대릉[大陵: 죽장릉(竹長陵)이라고도 한다]
14대 유례이사금의 능에 관한 기록이 없음
15대 기림이사금의 능에 관한 기록이 없음
16대 흘해이사금의 능에 관한 기록이 없음
17대 내물이사금의 능에 관한 기록이 없음

  ☆ 삼국유사에는 능이 점성대(占星臺) 서남쪽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18대 실성이사금의 능에 관한 기록이 없음
19대 눌지마립간의 능에 관한 기록이 없음
20대 자비마립간의 능에 관한 기록이 없음
21대 소지마립간의 능에 관한 기록이 없음
22대 지증마립간의 능에 관한 기록이 없음
23대 법흥왕의 능은 애공사 북봉(哀公寺北峰)
24대 진흥왕의 능은 애공사 북봉(哀公寺北峰)
25대 진지왕의 능은 영경사 북쪽(永敬寺北)

  ☆삼국유사에는 애공사 북쪽이라 기록되어 있다.

26대 진평왕의 능은 한지(漢只)
27대 선덕여왕의 능은 낭산(狼山)
28대 진덕여왕의 능은 사량부(沙梁部)
29대 태종무열왕의 능은 영경사 북쪽(永敬寺北)
30대 문무왕의 능은 동해구 대석상(東海口 大石上)

  ☆ 삼국유사에는 능이 감은사 동쪽 바다 가운데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문무왕릉으로 비정되는 산해관 노룡두 해신묘 

 

31대 신문왕의 능은 낭산 동쪽(狼山東)
32대 효소왕의 능은 망덕사 동쪽(望德寺東)
33대 성덕왕의 능은 이거사 남쪽(移車寺南)

  ☆ 삼국유사에는 능이 동촌 남쪽에 있는데 양장곡(楊長谷)이라고도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34대 효성왕은 법류사(法流寺) 남쪽에서 태워 뼈를 동해에 뿌림(散骨東海)
35대 경덕왕의 능은 모지사 서잠(毛지寺 西岑)

  ☆ 삼국유사에는 처음에 경지사(頃只寺) 서쪽 봉우리에 장사지내고 돌을 다듬어 능을 만들었으나 후에 양장곡으로 이장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36대 혜공왕의 능에 관한 기록이 없음
37대 선덕왕은 불태운 후 동해에 뿌려달라고 유언함
38대 원성왕은 봉덕사 남쪽에서 불태움

  ☆ 삼국유사에는 능이 곡사(鵠寺)에 있는데, 지금의 숭복사로 최치원이 세운 비석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39대 소성왕의 능에 관한 기록이 없음
40대 애장왕의 능에 관한 기록이 없음
41대 헌덕왕의 능은 천림사 북쪽(泉林寺北)
42대 흥덕왕의 능은 장화왕비릉 합장(合葬 章和王妃之陵)

  ☆ 삼국유사에는 능이 안강(安康) 북쪽 비화양(比火壤)에 있는데, 왕비 창화부인과 합장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43대 희강왕의 능은 소산(蘇山)
44대 민애왕의 능은 예를 갖추어 장사지냈다는 기록만 있음
45대 신무왕의 능은 제형산 서북쪽(弟兄山 西北)
46대 문성왕의 능은 공작지(孔雀趾)
47대 헌안왕의 능은 공작지(孔雀趾)
48대 경문왕의 능에 관한 기록이 없음
49대 헌강왕의 능은 보리사 동남쪽(菩提寺 東南)
50대 정강왕의 능은 보리사 동남쪽(菩提寺 東南)
51대 진성여왕의 능은 황산(黃山)

  ☆ 삼국유사에는 화장하여 뼈를 모량서악(또는 미황산)에 뿌렸다고 기록되어 있다.

52대 효공왕의 능은 사자사 북쪽(師子寺 北)
  ☆ 삼국유사에는 사자사 북쪽에서 화장하여 뼈는 구지제(仇知堤) 동쪽 산 중턱에 간수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53대 선덕왕의 능은 죽성(竹城)
  ☆ 삼국유사에는 화장하여 뼈를 잠현(箴峴) 남쪽에 보관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54대 경명왕의 능은 황복사 북쪽(黃福寺 北)
  ☆ 삼국유사에는 황복사에서 화장하여 뼈를 성등잉산(省等仍山) 서쪽에 뿌렸다고 기록되어 있다.

55대 경애왕의 능에 관한 기록이 없음
56대 경순왕의 능에 관한 기록이 없음

  ☆ 삼국유사에는 능이 ○○ 동쪽 방향 마을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신라의 천년도읍 금성은 만리장성 산해관 부근

 

 연새호 전경

 

만리장성 산해관 부근의 각산장성 

 

  우리는 지금 신라의 왕릉들이 한반도 경주 부근에 조성되었던 것으로 믿고 있으나 이는 우리의 착각일 뿐이다.
  경주의 오릉은 혁거세거서간, 알영왕비, 남해왕, 유리왕, 파사왕의 능이 아니고, 대릉원 역시 신라 왕릉들이 모여 있는 곳이 아니며, 선도산고분군, 금강산고분군, 서남산고분군, 동남산고분군, 낭산고분군 등도 모두 신라 왕들이 죽어 묻힌 곳은 아니다.      
  지금 경주에 있는 고분 중에서 주인공이 신라 어느 왕이라는 것이 확실하게 밝혀진 신라 왕릉은 한 곳도 없는데, 이는 한반도 경주에 신라왕릉이 조성된 적이 없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이다.
  경주의 고분들을 모두 발굴해 본다해도 그곳에서 고분의 주인공이 신라 어느 왕이라는 물증은 절대 출토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신라의 천년 도읍 금성은 한반도 경주가 아니라 지금의 중국 하북성 진황도 산해관 부근이므로 신라의 왕들은 죽어 그 부근에 묻혔기 때문이다.
  따라서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기록된 신라 왕릉의 조성 위치는 한반도 경주 부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진황도 산해관 부근에 관한 기록인 것이다.

  산해관 노룡두에 있는 해신묘(海神廟)는 시신을 불태운 후 동해 바닷가 큰 돌 위에 장사지냈다는 신라 문무왕의 능으로 비정되는 곳이고, 그 앞 바다인 지금의 발해가 바로 신라의 동해바다인 것이다.
  그리고 신라·백제의 동남쪽에 위치했었다는 고대 왜국은 지금의 요동반도 부근에 위치했었다는 말이지 일본열도에 위치했었다는 말이 아니고, 신라, 백제의 북쪽에 위치했었다는 말갈은 지금의 대흥안령산맥 부근에 위치했었다는 말이지 연해주에 위치했었다는 말이 아니며, 고구려의 서쪽에 위치했었다는 선비는 지금의 산서성 북부에 위치했었다는 말이지 요하 서쪽에 위치했었다는 말이 아니며, 고구려의 북쪽에 위치했었다는 부여는 지금의 북경 북쪽 내몽골에 위치했었다는 말이지 압록강 북쪽 만주지역에 위치했었다는 말이 아니다.    
  지금의 중국 하북성 진황도, 당산, 승덕, 장가구, 요녕성 호로도 그리고 천진, 북경, 내몽골 등이 우리 고대 역사의 중심이었다.
  우리의 고대 강역은 북경 서쪽 태행산맥까지였고, 북쪽으로는 내몽골, 몽골지역이었다.
  그곳이 우리의 잃어버린 옛 땅이다.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한반도 경주가 신라의 천년 도읍 경주라고 고집하고, 서울이 백제의 도읍 한성이라 하며, 북한 평양이 고구려의 도읍 평양성이라고 하고, 가야가 김해부근이라 하며, 고대 왜국이 지금의 일본열도라고 착각하고, 선비가 대흥안령산맥 부근에 위치하고 있었다고 인식하는 한 우리 고대 역사의 진실은 영원히 밝혀내지 못할 것이다. 
  발상을 전환하여 한반도 속에 갇혀 버린 잘못된 역사 인식의 껍질을 깨야 한다. 그리고 사고의 폭을 넓혀 대륙을 보라.
  그곳에 우리의 옛 땅이 있으니...................
 

 

출처 : 역사 천재들의 모임
글쓴이 : 윤여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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